2012년 2월 9일 (목)요일 일간지에 게재된 파버카스텔 보도기사입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20948391

 

책마을]

`물건` 을 꺼내놔야 인생이 살 만해진다

 

남자의 물건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336쪽 / 1만5000원

사소하지만 좋아하는 물건 통해 타인의 삶·내면풍경 엿보기
2012020948391_2012020956841.jpg
내 작업실 근처에 새로 문 연 치킨집이 있다. 창밖 행인들과 바로 얼굴이 마주치는 탁자에 앉아 바비큐 치킨을 먹는 동안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의 동네 아주머니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내 얘기가 아니다. 마주 앉아 닭다리를 뜯는 인간이 김정운이었다.
사람들, 특히 여인들이 잠시도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그는 지금 미디어 스타로, 베스트셀러 저술가로 가장
잘 팔리는 기업체 강사로 구름 위를 난다. 그런 그가 지금은 일본의 한적한 도시 나라에 피신해 가 있다.
심신피로에 공부와도 너무 멀어져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학교(명지대)에 양해를 구해 6개월 안식기간을 얻은 것이다.
《남자의 물건》을 출간하는 정황이 이렇다.

김정운의 전공인 심리학 앞에 ‘문화’가 붙어 있다. 그는 문화심리학자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지를 놓고 모든 전문가들이 정치경제학적 문제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아무리 토론하고 주장해도 사태는 나아지질 않는다. 그는 다른 접근법으로 우리 사회를 보고자 했다.
문화적 요소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삶의 불안, 적개심, 허무감과 우울증….
관심의 초점은 한국인의 내면 풍경으로, 그중 남자들로, 또한 그중에서도 중년남자들로 모아졌다.
우리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삶의 이야기(내러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중년 사내들의 일상을 보라.
전쟁 후의 잿더미를 딛고 기적처럼 성장한 나라에서 아무도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일인가.

2012020948391_2012020956851.jpg

《남자의 물건》을 쓴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물건이 있을 때 삶이 즐거워지고 충만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만년필을 60개 정도 모았다. /21세기북스 제공

 
 
《남자의 물건》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 장 ‘남자에게’는 킬킬거리며 읽는 파트다.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를 애인에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식의 지루한 한국 남성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
재미와 행복’, 이 핵심가치를 포기한 삶을 공격성과 허무감이 지배한다. 그렇다고 누구를 야단치는 어법이 아니다.
바로 우리 곁의 너와 나, 곧 저자 자신의 이야기니까. 학자가 하는 일은 흩어진 사례를 개념화해 그것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다양한 심리학의 전문용어가 적절할 때 불쑥불쑥 출몰한다. 각각의 개별적인 행동들이 ‘왜’ 그런지를 밝혀주는 근거다.

이야기는 술자리 객담처럼 한갓지게 그리고 매우 웃기게 흘러가는데 그걸 품는 도착점에는 이론이 있다.
두 번째 파트가 바로 이 책의 표제가 된 ‘남자의 물건’이다. 한국 남자가 불행한 것은 삶의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야기가 담겨 있는 흔적이 바로 남자의 물건이다. 아랫도리 이야기가 아니다. 실은 아랫도리를
연상하라고 어쩌면 여성 독자를 의식한 제목이 아닌가도 싶은데 여자 기자 유인경은 이렇게 말했다고 서문에 나온다.
“차범근의 물건은 무척 관심 있는데 안성기, 조영남의 물건은 아무 관심 없네요!” 그렇게 열 명의
사내를 만나 애호하는 물건의 이야기를 인터뷰했다. 차범근은 독일 체류 시절 아침식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계란 받침대,
안성기는 스케치북, 조영남은 안경, 이런 식이다. 이중에 눈이 번쩍 뜨이는 등장인물이 있다.
문재인과 김문수가 뜬금없이 나오는 것이다.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 이 책은 물건의 이야기지만 물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통해 그의 삶과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려는 기획이다.
문재인의 바둑판, 김문수의 수첩에서 과연 어떤 정치철학이 나타날까. 저자는 영리하다.
어쩌면 황희정승이다. 전혀 상반되는 양자의 가치를 극대화시켜 놓았다.
만일 이 책을 읽고 한쪽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려면 완전히 혼돈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까 포인트는 어떤 선택이나 추종이 아니다.
모든 각자의 길, 그러나 나름 근사한 모델이 열 가지 물건을 통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김갑수 < 시인·문화평론가 >
 

@ 파버카스텔 프리미엄마케팅

Tel) 02-712-1350